글쓰기

[서평] 단순한 열정 : 아니 에르노

@withgol 2021. 12. 23. 0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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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한 열정 - 아니 에르노

한 여인(아니에르노)의 솔직 담백한 러브스토리.
한 남자와 사랑에 빠지고 다시 헤어진 후, 그 사랑이 남겨둔 기억들을 반추한다.
너무나도 사실적인 서술방식, 작가 자신이 실제로 겪은 이야기라니 더욱 놀랍다.
사랑이란 결국 기억이고, 그 기억도 머지않아 흐릿해지는 순간이 온다.
아무리 소중했던 사랑의 기억도 세월의 무게를 견뎌낼 수는 없다.
아니 에르노는 어쩌면 글쓰기라는 행위를 통해 잊힐 수 밖에 없는 사랑의 기억을 영원히 붙잡아두려 했던 것 같다.




직접 체험하지 않은 허구를 쓴 적은 한번도 없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 아니 에르노



그 사람을 기다리는 일 외에는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다.

이 재킷만 걸치면 저 사람은 떠나겠지. 나는 나를 관통하여 지나가는 시간 속에 사록 있을 뿐이다.

그 사람과 함께 있던 어느날 오후, 펄펄 끊는 물이 들어있는 커피 포트를 잘못 내려놓는 바람에 거실의 카펫을 태워버렸다. 하지만 나는 아무렇지도 않았다. 오히려 불에 탄 그 자국을 볼 때마다 그 사람과 함께 보낸 열정적인 순간을 떠올릴 수 있어서 행복했다.

나는 다만 있는 그대로 보여주고 싶을 뿐이다.

여러 가지 제약이 바로 기다림과 욕망의 근원이었다.

나는 앉기만 하면 이내 A를 생각하며 몽상에 빠져들었다. 이런 상태에 들어서는 순간, 나는 온몸에 경련이 일어날 만큼 행복해졌다.

이런 이야기들을 숨김없이 털어놓는 것을 나는 조금도 부끄럽게 생각하지 않는다. 이 글이 쓰이는 때와 그것을 나 혼자서 읽을 때, 그리고 사람들이 그것을 읽는 때는 이미 시간상으로 상당한 차이가 있을테고, 어쩌면 남들에게 이 글을 읽힐 기회가 절대로 오지 않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그러므로 자기가 겪은 일을 글로 쓰는 사람을 노출증 환자쯤으로 생각하는 것은 잘못이다. 노출증이란 같은 시간대에 남들에게 자신을 드러내 보이고 싶어하는 병적인 욕망이니까.

프랑스에서의 A의 직위나 역할은 뭇 여성들의 숭배를 끌어내기에 충분해 보였다. 반면 내게는 그 삶을 내 곁에 붙들어둘 만한 별다른 매력이 없는 것 같았다.

나는 언젠가 그 사람이 떠나는 순간이 올 거라는 강박관념에 시달렸다. 나는 고통스러운 미래의 쾌락 속에 살고 있었다.

나는 그 사람에 대한 책도, 나에 대한 책도 쓰지 않았다. 단지 그 사람의 존재 그 자체로 인해 내게로 온 단어들을 글로 표현했을 뿐이다. 그 사람은 이것을 읽지 않을 것이며, 또 그 사람이 읽으라고 이 글을 쓴 것도 아니다. 이 글은 그 사람이 내게 준 무엇을 드러내 보인 것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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